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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는 노인들]

5.18의 미래

by 黃薔 2017. 3. 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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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님은 1927년생으로 올해 아흔이시다. 어머님은 1933년생으로 올해 여든넷이시다. 하여 노인네 이야기만 나오면 늘 민감해지고 관심이 간다. 한때는 막내아들과 사시겠다고 미국에 오셨다가는 길어야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가셨다. 두 분의 희로애락이 모두 한국땅에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리라. 

내가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전근을 온 것이 2003년 말이니 햇수로 14년에 접어든다. 경제 규모도 크고 그에 따라 물가도 비싸고 집값도 비싼 이곳에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을 준 분이 1920년생 Carl William Poll과 1919년생 Helen Nelson Poll 부부였다. Carl은 2011년에 Helen은 2016년에 두 분 모두 아흔 살을 넘기고 돌아가셨다. 

그런데 두 분의 죽음이 내가 보기엔 병사라기보다는 아사로 느껴진다. Carl이 사망하기 전에 욕조에서 삐끗하여 골절되는 바람에 한 살 많은 아흔 두 살의 부인 Helen이 수발을 들어야 했다. 슬하에 아들 셋 딸 하나가 있었지만, 아들 둘 딸 하나는 분가하여 자신들 살기도 바빠 늙은 부모를 돌볼 수 없었고 막내아들은 자폐로 오십이 되도록 부모의 도움을 받아 함께 살고 있었다. 

아흔 두 살의 Helen이 거동 불편한 남편과 장성했지만, 손길이 필요한 자폐아들을 건사하기엔 무리였다. 방문 간호사가 가끔 와서 남편을 돌보았지만, Carl은 내가 찾아가면 늘 배고파했고 내가 뭘 좀 먹여주면 정말 허겁지겁 먹기에 바빠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근처 고등학교에서 음악선생으로 은퇴한 아주 감수성이 풍부한 멋쟁이였는데 말이다. 

그러다 2011년 3월 26일 죽었다고 연락이 왔고 교회에 말쑥하게 화장한 죽은 Carl의 얼굴에선 마치 나만 보면 배고프다고 뭐 좀 먹을 것을 먹여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된 Helen은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직접 운전을 하며 장도 보고 우리 집도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작년 초 욕조에서 나오다 Carl처럼 삐끗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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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거동이 불편해지니 자식들이 들락거리고 또 방문간호사가 뻔질나게 드나들고 하였지만 2016년 6월 4일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문득 '아 또 굶어 죽은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실제 노인병 전문 의사들의 이야기는 내 느낌이 추측이나 비약이 아닌 이야기들을 제법 많이 하곤 한다. 그래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도 그에 따라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 절대 요양원에 들어가지 마세요.' '아버지 수발이 힘에 겨우시면 무리하지 마시고 아버지만 요양원에 입원시키세요.' '정신이 온전하실 때까지 장 보러 가시거나 할 때는 지팡이 대신 운전을 하고 다니세요.' '절대로 절대로 넘어지지 마세요.' '자나 깨나 골절당하지 않게 조심조심하세요.' '음식은 거르지 마시고 든든하게 잡수세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부모가 재산이 좀 있으면 그 재산을 노리고 죽기를 기다리는 자식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부모가 물려줄 재산이 없으면 짐이 될까 두려워 늙은 부모를 내버려 두어 죽음으로 모는 자식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그나마 미국은 한국보다 100세에 육박하여 죽음을 맞이하니 미국이 조금 더 노인 보호가 되는 듯하다. 

서양문화는 죽음은 영원히 삶과 분리되어 남은 가족과 이별한다는 기독사상으로 인해 동양보다 삶의 애착이 강하고 죽음은 악이며 자살은 죄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동양문화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종교관과 세계관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덜한듯하고 자살조차도 결백의 의미로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동양문화가 노인경시 풍조를 조장할 만하다 하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노인의 사망 이유 중 노인 아사, 굶어 죽는 노인들이 동서양을 떠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최소한 내 부모만은 굶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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