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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를 또다시 읽고]

2020년5월18일

by 黃薔 2017. 3. 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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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무죄 판결 이후 '제국의 위안부' 이야기의 최근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역시 지치지 않고 마녀사냥의 화살은 나에게도 날아왔다. 1970년대 중.고등학생 시절 김성종의 신문 연재소설 '여명의 눈동자'를 읽었을 때 충격적이었고 내용이 너무 불편했다. 그 소설로 인해 나는 일제의 종군 '위안부'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내가 불편하여 피하듯 아무도 '위안부' 이야기를 떠들지 않았다. 

내가 미국에 유학을 핑계로 군부독재를 피해 도망 나온 뒤인 1990년대 '여명의 눈동자'는 미화되고 각색되어 인기드라마로 미국 교민들 조차 비디오테이프로 눈물 콧물 흘리며 보는 드라마가 되었다. 그 뒤로 조금씩 '정신대'와 혼동되면서 '위안부' 문제들이 거론되고 모두에게 불편한 이 진실을 용감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직업적 운동가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1965년 박정희의 한일청구권 협상에 빠졌다는 이유로 그 딸 박근혜가 느닷없이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 타결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사이 나는 내 고조부와 증조부가 일제에 죽임을 당한 내 가족사를 알게 되어 반일의 선봉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제목부터 머리끝이 곤두설 '제국의 위안부'의 출간은 자연스럽게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되었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와 그 저자를 요절을 낼 작정으로 그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앞부분부터 저자가 인용한 내용은 구역질이 나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말로 위안부 문제를 우리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 일본 쪽 이야기까지 첨부한 이 정도의 담론이 없었기에 숨을 참아가며 읽어가기 시작했다. 

난 누구에게도 위안부의 정확한 숫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주장에서 적게는 2만에서 많게는 30만까지 신뢰하기 힘든 주장만 접했었다. 이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일본 측 자료에 입각한 8만에서 10만이라는 숫자도 등장한다. 또 미화된 '여명의 눈동자'에서처럼 동지애라든가 '스톡홀롬 신드롬'을 연상케 하는 일본 측 주장도 소개한다. 

'제국의 위안부'가 학문적 연구서라 하기엔 한참 부족한 책이다. 하지만 한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고 이 정도라도 애쓰는 문서로도 이 책은 처음이다. 당했던 입장에서 같은 동족이 당한 우리 동족을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일본을 매섭게 몰아붙이지 않는 것에 분노할 만 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당사자 일본과 이 불편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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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관점에서 이 책은 일본 측 주장을 충분하게 반영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범죄를 일본식으로 추궁하기 시작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같아서는 천하에 못된 일본 연놈들을 지구 상에서 박멸하여 사라지게 했으면 여한이 없겠지만 어쩌면 저 일본의 주류는 망한 백제의 후예가 흘러가 만든 우리 고대사의 흔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만 해도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나 같은 취급을 받기도 하고 정치적 모임에서는 혼다 하원의원을 동양계가 몽땅 모여 지원하고 선거에 당선시키기도 한다. 난 일본이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들이 어떤 거짓말을 어찌하는지 들어보고 우리의 반박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일본의 전쟁범죄 성노예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사람에 비하면 나는 '후로꾸'이다. 하지만 비록 '제국의 위안부'가 

1. "구조적인 강제성은 일제의 식민체제에서 나왔고, 현실적인 강제성은 한국인 모리배들이 한 것이니, 이 모두에게 고루 '위안부 강제동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여 본말을 전도하고 문제의 핵심과 경중을 희석할 수 있는 위험이 숨어있다 하더라도. 

2. "조선인 위안부를 가라유키상의 부분집합"으로 봄으로써 그들이 다른 국가에 대해 저지른 폭력에 대한 책임이 희석되었다 해서. 

3. "센다 가코가 말한 위안부 숫자 8만 명에서 10만 명"을 인용하여 그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소녀상 나이를 높이더라도. 

4. "일본군과 위안부가 느꼈을 수도 있는 교감이, 인질범에게 인질이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하게 만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이러한 우려의 부분들을 일본 측이나 친일세력의 무리가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는 노파심만으로 '제국의 위안부'와 그 저자를 비난하고 실정법을 동원하여 단죄하는 것은 '마녀사냥'과 다르지 않다. '제국의 위안부'는 분명하게 일본제국주의 전쟁범죄를 통렬하게 비난하고 반성하고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제국의 위안부'와 그 저자를 비난하고 나처럼 조금이라도 그 책을 옹호하려는 자를 적대시하는 것은 한일 과거사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보지도 않으려는 태도라는 생각도 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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