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국군간호사관학교 부활의 숨은 은인 김근태

이야기

by 黃薔 2020. 3. 8. 14:17

본문

반응형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에 대한 홀짝수 남녀동수 배정을 이끌어 내어 대한민국에 여성 정치력 향상의 결정적 발판을 만든 그 배경 이야기] 

.

국군간호사관학교 부활의 숨은 은인 김근태

.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98년 IMF 경제위기 극복과 군개혁의 일환으로 김대중 정부에 의해 폐교결정이 난 이후 1999년 가을부터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어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법률 제4839호'에 의거 3년연속 신입생을 받지 못하면 자동폐교가 결정된 상태였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접한 이상원 박사는 간호장교 출신 아내 김영신(26기)에게 선물한 사이트[2]를 중심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 폐교 반대 비상대책위원회'[3]를 조직하고 폐교 반대투쟁[4]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5개월간 온·오프라인 상에서 국민들에게 존속의 당위성을 인정 받았다[5],[6]. 2001년 5월 31일, 자동 폐교 3개월을 앞두고 건국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가 집행한 행정행위를 뒤집고, 새천년 민주당 이해찬 정책위 의장과 한명숙 여성부 장관과의 당정협의회를 통해 존속을 결정하였다[7],[8],[9],[10].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여성장교단의 숙원인 여성장군[11]을 배출하기 시작하였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에 대한 홀짝수 남녀동수 배정을 이끌어 내어 대한민국에 여성 정치력 향상의 결정적 발판을 만들었다. 2009년 국군간호사관학교 총동문회[12]는 이 공로를 기려 이상원 박사를 명예동문에 위촉하였다." (위키백과 국군간호사관학교 https://ko.wikipedia.org/wiki/국군간호사관학교 내용 중 '연혁 존속투쟁'에서 )
.
국군간호사관학교 부활의 숨은 은인 김근태

.
국군간호사관학교는 가난하지만 공부하고자 하는 한국 여성의 유일한 무료 고등교육기관이었습니다. 유일한 무료여성 교육기관을 그 이유로 폐교한 것이지요. 1999년 2000년 신입생모집이 중단되고 법에 따라 3회 연속 신입생을 받지 않으면 당연 폐교되는 판이었습니다. 2001년 온 군국간호사관학교 동문이 들고 일어나 국군간호사관학교의 부활을 위한 투쟁을 전개할 때 제 소사(부천) 동네 선배였던 김근태 부총재는 다음과 같은 명분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 살리기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
"세상에 절반은 여자인데 여성 지도자 양성 고등교육기관을 더 만들면 만들었지 폐지라는 게 말이 되느냐? 육사 공사 해사도 여생도를 뽑는데, 이 기회에 여성 장군도 배출하고 또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비례대표제에 남녀 홀·짝수 동수를 배정하도록 하자. 또 국가 행정행위는 번복할 수 없다고 하는데 잘못되고 바르지 못하면 번복 못하는 게 없다."고 당과 정부를 설득했습니다.
.
그래서 국군간호사관학교는 김근태 부총재의 배려로 자동폐교 3개월을 앞두고 2001년 5월 31일 이해찬 정책위 의장과 한명숙 여성부 장관의 당정 협의회를 통해 폐교라는 국가의 행정행위를 번복하고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는데 이산하(Lee Sanha) 시인께서 김근태 평전을 쓰신다 하니 이 사실이 꼭 들어갈 수 있도록 알려드립니다.
.
+++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