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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부관참시(Posthumous Execution)

5.18의 미래

by 黃薔 2022. 5. 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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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AJRJCwoB7Q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과 전두환
부관참시의 역사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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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고한 국민의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을 “역사가 심판한다”며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사람인 우리가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을 심판하고 그것이 기록되는 것이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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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군부치하의 독재자들에 대해 혹자들이 위안삼아 말장난처럼 하던 “역사가 심판한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라는 어떤 절대자가 구름을 타고 나타나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에게 벼락을 내리친다는걸 믿는거나 마찬가지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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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잉글랜드의 헨리8세가 왕으로 있을때 카톨릭 수도원을 해체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재에 밝은 프로테스탄트 개신교도인 칼뱅주의자중에는 그 수도원들을 헐값에 불하받아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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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9년 4월 25일에 태어난 ‘올리버 크롬웰’의 부모가 바로 그 프로테스탄트 개신교도인 칼뱅주의자로 신흥 부동산 부자였습니다. ‘올리버 크롬웰’은 자연스럽게 카톨릭과 성공회에 반감을 가지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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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은18살이 되던 1617년에 부동산으로 재산을 축적하던 부친 로버트 크롬웰이 죽고 가세가 기울자 이것도 군주제의 잘못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 이후 오랜기간 의회정치에 발을 들여 놓으며 군주제와 맛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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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은 42살되던 1641년에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인 칼뱅주의를 부각시키는 종교개혁적 내용의 ‘대간의서(Grand Remonstrance)’를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간의서’가 의회에서 통과되 않으면 자신은 잉글랜드를 떠나 돌아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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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애석하게도 ‘올리버 크롬웰’은 ‘대간의서(Grand Remonstrance)’가 부결되었습니다. 그러자 ‘올리버 크롬웰’은 잉글랜드를 떠나는 대신 1642년 ‘청교도혁명(Puritan Revolution)’이라 일컬어지는 ‘영국내란(English Civil War)’의 선봉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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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은 44살되던1643년, 의회군을 조직하여 높은 급료를 주어가며 충성을 강조한 정예군을 만들어 철갑기병무장을 합니다. 1644년엔 스스로 대령에서 중장으로 진급하며 총사령관인 맨체스터백작에게 항명하고 또 스스로 부사령관에 취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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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은 스스로 잉글랜드와 스코트랜드 양쪽 왕국의 의회의원이자 의회군 부사령관을 겸직하며 무시무시한 군부독제를 펼칩니다. 1647년에는 ‘올리버 크롬웰’의 폭정에 겁을 먹은 찰스1세가 스코트랜드로 야반도주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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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무력으로 잉글랜드-스코트랜드-아일랜드를 평정한 ‘올리버 크롬웰’은 찰스1세를 처형합니다. 1949년 9월 아일랜드 드로이다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가톨릭교도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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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은 자신의 잘못을 희석시키고자 수많은 귀족들을 자신의 정치에 끌어들이고 줄줄이 높은 자리에 안칩니다. 그사이 1650년 스코트랜드에서는 찰스2세를 왕으로 승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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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에는 의원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자신의 군대를 동원해 해산하고 자신이 지명한 사람들을 의원으로 만들어 새로운 의회를 구성합니다. 그 꼭두각시 의회에서 ‘올리버 크롬웰’ 자신은 잉글랜드-스코트랜드-아일랜드를 통치하는 ‘호국경(Protectorate)’에 취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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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사법-행정권의 장악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하다못해 옥스포드대학의 총장까지 겸임을 합니다. 자신은 옥스포드대학 시드니분교 1학년을 다닌 학력이 전부인데 말이지요. 어마 어마한 독제자가 된거지요. 전두환과 비슷하다 할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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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년부터는 경제난 타개를 부르짖으며 식민지 전쟁에 뛰어듭니다. 그때가 동인도 척식회사를 통해 인도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지요. 1655년엔 자신이 지목한 의원들의 꼭두각시 의회마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산을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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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의 말로가 다가옴을 예견하게 만들지요. 1658년에도 같은 이유로 또 의회를 해산합니다. 그리고 그해 8월 자신의 딸이 암으로 죽고 ‘올리버 크롬웰’도 말라리아 걸려 9월 3일 3시에 화이트홀에서 59세의 나이로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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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년 11월 10일 ‘올리버 크롬웰’의 마지막 추종자들에 의해 웨스트 민스터 묘지에 비밀리에 묻치고 13일 뒤에 국장이 치루어 집니다. 이미 스코트랜드에서1650년부터 왕으로 인정된 찰스2세가 돌아와 왕정이 복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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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은 죽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그자의 추종자들이 생전의 ‘올리버 크롬웰’의 치적을 문서로 만들고 기를 쓰고 죽은 독재자를 미화하며 방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미화작업은 역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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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뒤 1661년 성난 주민들이 웨스트 민스터 묘지로 몰려가 ‘올리버 크롬웰’의 묘지를 파헤치고 그의 시신을 꺼내 교수대에서 목을 참수합니다. 시신의 몸둥이는 교수대아래 묻고 머리부분은 웨스트 민스터 홀 맨꼭대기에 찰스2세 집권말까지 내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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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의 시신을 그자의 살아생전의 죄값을 물어 쳐형하는 것을 ‘부관참시(Posthumous execution)’라고 합니다. 서구인들에게 배울점 하나가 바로 이부분입니다. 우리도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에 대한 처단을 확실히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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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아쉽게도 지난 2021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에 확진되어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전두환은 10월 26일 쿠테타 동지로 학살에 동참했던 노태우가 죽은 이후 28일 뒤인 11월 23일 오전 8시40분에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화장실에서 쓰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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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오전 9시12분 자택을 방문한 경찰에 의해 전두환은 사망 판정을 받아 91세로 거의 자연사로 죽었습니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졌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 뒤, 유해는 화장하였습니다. 유골은 혹시라도 부관참시를 당할까 염려하여 연희동 자택에 숨겨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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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을 심판하는게 않이라 살아있는 우리들이 설사 자연사 하였어도,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을 처단하여 ‘역사’에 기록하여 후세에 본이 되게 하여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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殺人魔 全斗煥 處刑 民俗놀이(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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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토록, 매년 5월 18일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이 한 손에는 장난감 짱돌, 또 한 손에는 장난감 몽둥이를 들고 연희동으로 몰려가, 살인마 전두환 인형이 박살 나도록 장난감 짱돌을 던지고 장난감 몽둥이찜질을 하는 민속놀이를 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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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과 전두환 - 부관참시의 역사적 사례’을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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